결의 정신분석일기
결의 상담일기 · 부부상담

나는 제주에서
부부상담을 하는 사람입니다

처음 상담실 문을 여는 부부들에게

나는 제주에서 부부상담을 하는 사람입니다.

이 문장을 쓸 때마다 조금 웃게 됩니다. 몇 년 전만 해도 나는 이 말을 이렇게 담백하게 하지 못했거든요. "상담 좀 한다"는 말 뒤에 늘 설명이 따라붙었습니다. 무슨 상담이냐고 물으면, 정신분석 기반이라고, 그게 뭐냐고 물으면 또 한참을 설명해야 했고요.

지금은 그냥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제주에서 부부상담을 하는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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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상담실 문을 여는 부부는 대체로 두 부류로 나뉩니다.

한쪽은 손을 꼭 잡고 들어옵니다. 그런데 앉자마자 그 손을 슬며시 놓습니다. 방금 전까지 잡고 있던 손을 상담실 문턱에서 놓아버리는 그 짧은 동작 하나가, 사실 이 부부가 지금 겪고 있는 일을 가장 정확하게 보여줍니다. 함께 왔지만, 각자 온 것 같은 느낌.

다른 한쪽은 애초에 따로 앉습니다. 소파 양 끝에 각자 앉아서, 서로를 보지 않고 저를 봅니다. "이 사람한테 좀 말해주세요"라는 눈빛으로요. 저는 심판이 아니라고, 여기서는 누가 맞고 틀렸는지를 가리지 않는다고 먼저 말씀드립니다. 그 말을 들으면 다들 살짝 당황하십니다. 그럼 뭘 하는 거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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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상담을 하는 사람으로서 제가 가장 많이 듣는 오해가 이겁니다.

"우리 중 누가 문제인지 가려주세요."

그런데 제가 몇 년째 이 일을 해오면서 확인한 건, 부부싸움에는 원래 '문제인 사람'이 없다는 겁니다. 대신 '반복되는 자리'가 있습니다. 같은 지점에서, 같은 방식으로, 매번 부딪히는 자리요. 싸움의 소재는 매번 다릅니다. 저녁 메뉴, 시댁 방문 횟수, 아이 교육 방식 — 표면은 계속 바뀌는데, 그 아래서 움직이는 감정의 모양은 거의 똑같습니다.

한쪽은 서운함을 느끼면 조용해지고, 다른 한쪽은 서운함을 느끼면 따집니다. 이 패턴이 굳어지면, 조용해지는 쪽은 "말을 안 하는 사람"이 되고 따지는 쪽은 "예민한 사람"이 됩니다. 서로에게 이름표를 붙이고 나면, 그 다음부터는 사람이 아니라 이름표랑 싸우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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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도 이후에 오시는 부부도, 이혼을 두고 고민하며 오시는 부부도 있습니다. 신뢰가 무너진 자리, 헤어짐 앞에서 흔들리는 자리 — 각자 사정은 다르지만 상담실에서 제가 하는 일은 비슷합니다. 지금 이 순간 두 사람 사이에서 실제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그 속도를 늦춰서 함께 들여다보는 일이요.

빠르게 화해시키는 게 제 역할은 아닙니다. 오히려 반대에 가깝습니다. 지금까지 너무 빨리 지나쳐온 감정들을, 잠깐 멈춰서 제대로 보게 만드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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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일을 오래 하다 보니 알게 된 게 하나 있습니다.

상담실 문을 여는 것 자체가 이미 큰 결심이라는 것. 손을 놓고 들어오든, 처음부터 따로 앉든, 일단 같은 공간에 함께 앉아있다는 사실 하나가 이미 어떤 마음의 증거입니다. "이 관계를, 이대로 놔두고 싶지 않다"는.

그 마음 하나면, 시작할 수 있습니다.

이 글은 실제 상담 사례를 그대로 옮긴 것이 아니라, 제주에서 부부상담을 하며 반복적으로 마주한 장면들을 재구성한 기록입니다. 특정인을 특정할 수 있는 정보는 담고 있지 않으며, 이 글은 진단이나 치료를 대신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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